First written: 24-04-25
Uploaded: 25-02-26
Last modified: 25-02-26
"1차 세계대전 후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주권자는 비상사태를 결정할 수 있는 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의 죽음이 다가온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한다. '주권자는 공간의 파동들에 대한 처분권을 가진 자다.'"
-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한병철, 「군중 속에서」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70p에서 재인용)
한병철에 따르면,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미디어를 이용한 통치 방식을 바라보며 주권자를 '공간의 파동들에 대한 처분권'을 가진 자로 정의했다. 쉬운 말로 해석하자면 '파동'이란 미디어를 송출하는 신호일 것이고, '처분권'은 미디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파동'에 대한 공포 때문에 카를 슈미트는 자기 집에서 라디오와 TV를 없앴다.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쇼츠를 즐기는 오늘날, 카를 슈미트와 동일한 공포를 가진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런데 카를 슈미트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내가 가진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음악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좋아했다. 공기에서 봄내음새가 날 때 외출하면 듣는 음악이 있었다. 겨울 향기가 날 때 듣는 음악이 있었다. 외출했는데 특정 기분이 들 때 트는 음악들이 있었다. 어떤 무드가 나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 시기에 자주 듣는 음악과 함께 외출하기를 즐겼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있었다. 어느 날은 내가 분명 기분 좋게 외출을 시작했는데, 슬픈 노래를 들으며 약속 장소로 가다보니 어느새 내 기분도 축 쳐졌다. 어느 날은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 주제에 대해 특별한 내 입장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듣던 노래가 화로 가득한 랩이어서, 나는 한쪽 편에 서서 반대편을 쏘아붙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 경험들에 눈이 가기 시작하면서 음악이라는 ‘파동’이 나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감정이 흔들리는 게 탐탁지 않았다. 자연스런 수순처럼, 외출할 때 음악을 듣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요즈음은 특정 감정에 저며진 채로 글을 쓰고 싶거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혹은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을 때 음악을 듣는다.
거의 백 살 까지 사셨던 카를 슈미트 할아버지는 mp3 플레이어나 유튜브 뮤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한병철은 같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에 (디지털 연결망을) 경험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을 터이다.”(같은 책, 69p) 나는 혹여 슈미트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도 너무 큰 두려움에 빠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4. 4. 25)
참고 서적:
한병철, 2024, 김영사,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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