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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쉼표 1-2. 세상을 마주칠 적에

세상과 나의 주변에 대한 짧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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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마주칠 적에

봄이 되기 직전 즈음, 방에 나방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나는 그 친구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봄이 되면 바깥으로 놓아주겠지만 그 전까지 나방이 살아야 하니까 밥이 될 만한 것이라도 주고 싶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인터넷이 없던 시절처럼 내 궁금증을 해결해보고 싶었다. 어떤 책에서 옛날에는 백과사전이 중요한 지식의 근원지처럼 여겨졌다는 글을 본 게 떠올랐다. 백과사전이든 책이든 직접 찾아보기로 하고 도서관엘 갔다.

도서관에는 나방에 대한 책이 네 권 있었다. 대부분 도감처럼 사진에 더 집중한 책이어서 내가 발견한 나방종을 책에서 찾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소모됐다. 덕분에 신기하게 생긴 나방들을 알게 되었다. 벌레 사진을 보는 게 껄끄럽지 않다면 털날개나방, 이끼불나방, 비행기밤나방의 모습을 찾아보길 바란다. 셋 중 한 종은 모기를 닮았다.

진화적 군비경쟁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박쥐의 주식은 나방인데, 박쥐는 먹이를 찾기 위해 초음파를 쏜다. 나방 중에는 이 초음파를 무력화시키는 기술(Jamming of echolocation)을 가진 나방들이 존재했다. 이 나방들은 포식자의 전파를 방해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고, 이에 맞춰 박쥐들도 더 진화된 초음파를 개발해왔다. 박쥐와 나방처럼 두 종 이상의 종이 서로 경쟁하듯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현상을 일컬어 진화적 군비경쟁이라고 한다.

도감과 함께하며 이런 저런 것은 알게 되었지만, 집에서 출몰한 나방이 뭘 먹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나방이 나무의 수액을 먹는다는 이야기만 간신히 찾았다. 몇 시간의 책 탐방을 마치고 집에 가면서 조만간 날이 따뜻해지면 서둘러 바깥에 풀어줘야 하나 생각했다. 나방이 나무 수액을 먹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니 말이다.

도서관에서 돌아와 집에서 컴퓨터를 켰는데 나방이 내 눈 앞을 지나갔다. 엄마나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알아볼까 하다가 이번에는 인터넷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인지 궁금해졌다. 구글에 ‘집 나방 먹이’를 검색했다. 검색결과 맨 위에 ‘화랑곡나방’이라는 나무위키 글이 떴다. 사진을 보니 방금 내 눈 앞을 지나간 나방과 같았다. 거기에는 이 나방이 어떤 종인지부터 먹이와 습성 등, 내가 알려던 모든 것이 있었다(쌀과 같은 곡류가 주식이었다). 기껏해야 몇십 초에서 몇 분 되지 않는 사이에 내가 알게 된 내용만으로 도서관 탐방도, 전화도 필요 없게 되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빠름. 인터넷이 없었다면 나는 책 탐방 이후 뭘 했을까. 아마 엄마나 아빠에게 전화를 했겠지. 가까이 사는 친구를 만났을 때 물어보거나, 아래층에 사는 주인집 할아버지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용건뿐 아니라 서로의 안부 정도는 물었을 것이다.
가르쳐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경험이 쓰이는 것이 기뻤을 것이다. 흥에 겨워 나방과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나 팁을 알려줬을지도 모른다.
효율적인 인터넷 덕에 우리의 관계가 더 납작해졌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얼마 전에 본 뉴스도 떠올랐다. 나이든 사람들이 세상에 자신의 쓸모가 없어졌다 느낀다는 기사였다.

(2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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